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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이야기

웃음이 묻어나는 이야기.유머.에피소드.사연.일상.아야기.편지 를 글로표현했습니다

병훈 채
병훈 채 Nov 14, 2025
 
 

요즘 이리저리 집안 정리할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어릴 적 앨범을 뒤적이게 됐어요.

그러다 어린 시절 오빠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이렇게 글을 올려 봅니다. 제게는 저보다 두 살 많은 오빠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약발이 잘 먹는(약 잘 먹이는) 오빠는 정말 장난도 심했어요. 엄마가 빵을 주시면 제가 가장 아끼는 인형을 갑자기 멀리 던져 버리고, 제가 울면서 뛰어가서 가져오는 동안 그 빵을 다 먹어 버리기도 했고, 반려견과 같이 놀아주듯 저를 괴롭히곤 했어요. 오랜 세월 동안 먹을 것은 혼자 다 먹는, 정말 못된 면도 많았죠.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느라 그런 오빠의 본 모습을 잘 몰랐고, 오빠를 저를 잘 챙기는 착한 아들로만 알고 계셨어요. 저는 그게 억울해서 밤낮없이 많이 울었죠. 오빠가 제 머리를 잡아당겼다고 하면 엄마는 “아이 우리 써니, 무서운 꿈 꾸었구나. 오빠가 재워줄게.”라며 오빠를 감싸곤 했어요.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에요. 그날은 화이트데이였거든요. 학교를 마치고 가방과 주머니를 들고 집에 왔는데, 주머니에 하얀 쪽지가 꽂혀 있었어요. 저는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쪽지를 열어봤죠.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우연히 지나가다 반하게 되었어요. 항상 밝게 오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좋아해요.”

그쪽지를 읽고 너무 기분이 좋고 설렜어요. 그런데 글씨가 어딘가 초등학생 같지 않았고, 좋아한다고 쓰면서도 학년·반·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죠. 이상하긴 했지만 그땐 그 점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다음날부터 등교할 때마다 혹시 어디선가 그 남학생이 날 보고 있을까 봐 부쩍 설렜죠.

그러다가 집에 오는 길에 오빠를 만났어요.

“야, 넌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면서 길을 걷냐? 깜짝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어라, 너 오늘 치마 입었냐?”

“야, 그런다고 호박이 수박되냐? 난 상관없어. 날 좋아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랬더니 오빠가 “응? 누가 널 좋아하는데? 나도 쪽지 받았거든” 이러며 장난스럽게 놀리더군요. 이상해서 오빠를 따라 집으로 갔더니 오빠는 혼자 웃으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전화하는 소리를 제가 들을 수 있었어요.

“얘, 바보라서 믿을 거라고. 얼른 만원 내놔, 형.”

알고 보니 오빠가 동네 아는 형과 내기를 해서 저를 놀린 것이었어요. 저는 그날 울면서 쪽지를 찢었고, 오빠가 망하기를 온 힘 다해 빌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생이던 오빠가 갑자기 “군대를 가겠다”라고 부모님 앞에서 말했어요. 대학 다니며 놀기만 하던 오빠가 진지하게 말하니 부모님은 놀라셨죠. 오빠는 “저도 사람이잖아요. 군대 가서 철 좀 들어야죠. 빨리 가서 다시 돌아와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오빠가 잘되길 바랐어요.

오빠는 훈련소에 가고 얼마 뒤 집으로 등기우편이 왔어요. 오빠가 다니던 학교에서 ‘제적’되었다는 통보였죠. 맨날 수업 빠지고 놀기만 하던 오빠는 결국 학교에서 잘렸어요. 부모님은 군대 있는 아들에게 욕을 퍼부으셨고, 저는 속으로 ‘오빠는 오래 살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몇 달 뒤, 오빠가 휴가 나와 집에 왔고 부모님은 용서해 주었어요. 오빠가 마른 몸으로 돌아오니 저는 안쓰러워서 중학교 때부터 모아둔 돈 100만 원을 통장째로 주었죠. “이 돈 가지고 정신 차려서 공부해라. 군대에서 공부해라.” 고 하면서요. 오빠는 “고맙다. 이제 예전과 다르다. 군대에서 진짜 반성했다”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 돈은 친구들 유흥비로 전부 쓰이고 말았어요. 하루 만에 흥청망청 다 써버렸더라고요. 저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어요. 정말 배신감이 컸죠.

그러다 오빠가 여자친구를 소개해 준다고 해서 잠깐 나갔는데, 오빠는 식당에서 여자친구에게 자기 동생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더군요. “내 동생이 정말 착하다. 군대 갔을 때 통장 줬다” 이런 식으로요. 여자친구의 손에 반짝이는 반지가 있었는데, 그 반지가 제 커플링이었던 겁니다. 몇 달 전에 남친이랑 헤어지고 커플링을 책상에 던져뒀었는데, 오빠가 그걸 가져다 여자친구에게 준 것이었어요.

오빠는 “너 그런 거 갖고 있으면 미련 생겨서 안 돼. 내가 처리해 준 거야. 고마워해”라고 했어요. 저는 분노했죠. 제 아픈 기억까지도 남의 것처럼 다루는 그 태도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오빠’라는 존재의 복잡한 면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어요. 미워할 때도 있고, 안쓰러울 때도 있는 — 가족 사이가 늘 그런 아이러니로 채워져 있더군요.

이런 오빠의 모습을 보면 천식 씨는 어떤 생각이 드실지 궁금해졌어요. 우리 오빠 도대체 왜 이럴까요? 이 오빠라는 인간의 실체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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